잛은 글

귀거래사(歸去來辭)

주호의 블로그2 2005. 1. 29. 09:20

돌아가련다
논밭이 곧 황폐해질 터인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여태 스스로 마음을 몸의 노예로 삼고
어찌 낙담하여 홀로 슬퍼했을까.
지난 일은 뉘우쳐도 소용없고
닥칠 일은 바르게 할 수 있음을 알겠다.
사실 길을 잃고 헤맨 것이 아직 멀리 가지 않았고
지금이 옳고 어제는 틀렸음을 깨달았다.
배는 기우뚱기우뚱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펄럭펄럭 옷자락을 날린다.
나그네에게 앞길을 묻고 새벽빛의 희미함을 한스러워 했다.
곧 대문과 지붕이 보여 기뻐하며 달려간다.
하인들이 반가이 맞아주고 아이들이 문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당의 세 갈래 오솔길은 황폐해지려 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다.
아이의 손을 끌고 방에 들어가니 술이 단지에 가득하다.
병과 잔을 끌어다 스스로 부어 마시고
힐끗힐끗 뜨락의 나뭇가지를 보며 기쁜 낯을 짓는다.
남쪽 창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있으니
무릎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곳에서도 편안할 수 있음을 안다.
매일 정원을 거닐어도 정취가 있고
문은 세웠지만 항상 닫혀있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여 돌아다니며 쉬다가
간혹 고개 들어 사방을 바라보면
구름은 무심히 멧부리를 빠져나오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돌아갈 때임을 안다.
햇빛은 뉘엿뉘엿 물러나려다
외로운 소나무를 쓰다듬으며 서성거린다.
돌아가련다 세속적인 사귐은 끊기를 청하니
세상과 나는 서로를 버렸거늘
이제 다시 가마를 타서 무엇하겠가.
친척들의 정다운 얘기에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없애련다.
농사꾼이 내게 봄이 왔다 알리니
서쪽 밭에 할 일이 생기겠다.
때로는 포장수레를 몰게 하고
때로는 배를 저어서 구불구불 골짜기를 찾아가고
험한 길로 고개를 지난다.
나무는 싱싱해서 울창해지고
샘은 졸졸 흐르기 시작한다.
만물이 제 때를 만났음을 부러워하고
나의 삶이 끝나감을 느낀다. 끝나 버렸구나.
세상에 육체를 맡길 날이 또 얼마나 되겠는가.
어찌 마음대로 가고 머무르지 않겠는가.
어찌 서둘러 어디로 가겠는가.
부귀도 바라지 않고 신선의 땅도 기약할 수 없다.
좋은 시절 떠올리며 홀로 거닐거나
지팡이 꽂아두고 김 매고 흙 북돋운다.
동쪽 언덕 올라 천천히 휘파람 불고
맑은 물가에서 시를 짓는다.
다만 자연의 조화에 맡겨 최후를 맞으려는데
천명을 즐길 뿐 또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 도연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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