잛은 글

가을날

주호의 블로그2 2005. 1. 27. 09:06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던져 주시고,
들녘에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남은 열매가 무르익도록 명령해 주시고
남국의 햇빛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시어
이들을 무르익으라 재촉하시고,
마지막 남은 단맛이
포도주로 담뿍 고이게 하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다시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이제 고독한 사람은 오래도록 고독을 누릴 것입니다.
밤을 밝혀 책을 읽고 긴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불안에 떨며 가로수 길을 마냥 헤매일 것입니다.

- 릴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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