잛은 글

비파행(琵琶行)

주호의 블로그2 2005. 1. 24. 09:29

심양강 나루에서 손님을 밤에 보내려니
단풍잎 갈대꽃에 가을 바람 쓸쓸하다
주인은 말 내리고 손은 배에 타고
술을 들어 마시려니 음악이 없네
취해도 즐거움 없는 이별을 하려하니
망망한 이별의 강에 달빛만 젖어 있네
그 때 물 위로 비파 소리 들려오니
주인도 손도 자리를 뜨지 못하네
소리 찾아 조용히 누구인지 물으니
비파소리 그치고 대답은 늦어
배를 옮겨 가까이가 자리를 청하며
술 따르고 등 밝혀 술자리를 다시 폈네
부르고 또 청해 겨우 나타났는데
비파 안고 얼굴을 반쯤 가리웠네
축 돌려 현을 골라 두 세 번 소리 내니
곡조도 이루기 전 정이 먼저 흐르네
줄을 누르고 눌러 가락마다 마음 실어
평생에 못다한 마음속 한 호소하듯
눈섶을 내리깔고 손에 맡겨 비파 타니
마음속 숱한 사연 모두 털어 놓는 듯
가벼이 누르고 비벼 뜯고 다시 퉁기니
처음은 예상곡 뒤에는 육요구나
큰 줄은 소란스런 소나기 같이
작은 줄은 가냘픈 속삭임 같이
소란함과 가냘픔 섞어서 타니
큰 구슬 작은 구슬 옥 쟁반에 떨어지듯
때로는 꾀꼬리 소리 꽃가지 사이 흐르듯
샘물이 얼음 밑을 흐느끼며 흐르는 듯
찬물이 얼어 붙듯 줄을 잠시 멈추니
멈추는 그대로 소리 또한 멎었네
그러자 깊은 근심 남모르는 원한 일어
소리 없음이 있음보다 애절하네
갑자기 은병 깨져 술이 쏟아져 나오듯
철기가 돌진하여 칼과 창이 부딪쳐 울듯
곡이 끝나 비파 안고 한번 그으니
네 줄이 한꺼번에 비단을 찢는 소리
강 위의 모든 배들 고요히 말을 잊고
오직 강 가운데 가을 달만 휘엉청
시름에 잠겨 있다 비파를 거두고
의상을 정돈하고 앉음새를 고친 후에
스스로 말하기를 본시 서울 여자로
집은 하마릉 아래 있었다 하네
열 셋에 비파 타기 모두 배우고
이름이 교방 제일부에 속해 있었는데
곡을 끝내면 늘 스승이 감복하였고
화장하면 미인들이 질투를 하였다하네
오릉의 젊은이들 다투어 선물을 주어
한 곡에 붉은 비단 수없이 받았었고
자개박은 은빗을 박자 맞추다 깨뜨리고
붉은 비단치마 술로 얼룩졌었다 하네
웃고 즐기며 한해 한해 보내느라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지냈는데
동생은 군대 가고 양어머니마저 죽고
어느덧 나이들어 얼굴빛이 변하니
문 앞은 쓸쓸하고 찾는 손님도 드물어
늙어서 어쩔 수 없이 상인의 아내되니
상인은 이익보다 이별을 가벼이 여겨
지난달 부량으로 차를 사러 갔다 하네
강 어귀에 왔다 갔다 빈 배만 지키자니
배 비추는 밝은 달에 강물만 차가와
밤이 깊어 문득 어린시절 꿈을 꾸면
꿈도 울어 화장 눈물 얼굴을 적신다 하네
비파 소리 듣고 이미 탄식 했는데
여인의 말 듣고 나니 다시 한숨이 나네
우리는 같은 천애의 불행한 신세
상봉이 어찌 아는 사이만의 일이랴
나는 지난 해에 서울을 떠나
심양성에 귀양와 병들어 누웠다네
심양 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어
한해가 다가도록 악기소리 못 듣고
분강 가까이 살아 땅이 낮고 또 습해
갈대와 대숲만 집을 둘러 무성타네
그 간 아침 저녁 들은 소리라고는
피맺힌 두견새와 원숭이의 슬픈 소리
봄강의 아침꽃과 가을밤 달빛 아래
가끔 술을 얻어 홀로 잔을 기울이고
어찌 산 노래와 초동의 피리 없으랴만
조잡하고 시끄러워 들어주기 어렵다네
오늘 밤 그대의 비파소리 들으니
신선 음악 들은듯 귀 잠시 맑았네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곡 들려주오
내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니
나의 말에 느꼈는지 한 동안 서 있더니
물러앉아 줄을 울리니 곡조는 점점 급해져
슬프기 그지 없어 앞의 곡과 다르니
듣는 모든 사람 소리죽여 흐느끼네
그 중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는가
강주사마의 푸른 적삼 흠뻑 젖어 있구나




- 백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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