잛은 글

대성하려면 근본적인 것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주호의 블로그2 2004. 9. 2. 18:51

평생을 바쳐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어 왔던
도공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백 년 전
조상들이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도자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조상들이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도자기!
빛깔과 질감이 그 당시 조상들이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그런 도자기를 재현해 낼 수는 없을까 하고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해보았으나
똑같은 도자기는 나오지 않았다.

푸르고 연한 그 빛깔을 볼 때마다
도공은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반드시 그 빛깔을 재현하겠노라고...

불가마의 온도를 그 당시와 동일하게 하기 위하여
그는 그 지역에서 나는 나무를
몇 해 간 말려 땔감으로 사용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빛깔과 질감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보기좋은 평범한 도자기들만
계속 생산되었다.

초벌구이의 유약에
어떤 비법이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참나무를 태운 잿물에다가
자신의 스승님으로부터 특별히 전수 받은
식물의 액체를 발라 구워 보기도 했으나
그 빛깔과 질감은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을 실패한 그는
이번에는 자신이 빚은 그 진흙에다가
그 지방의 산속에서 많이 나오는
열매의 진액을 짜내어 넣고나서
정성스럽게 흙을 반죽하여 가마에 넣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민에 빠진 그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빛깔을 낼 수 있을것인지 궁리하다가
자신이 처음 도자기를 배우던 고향의
그 가마터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에는 옛날 도공들의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가마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부수어 버린
도자기들의 파편을 흔하게 주울 수 있는 곳이었다.

어렸을 때 수십 개나 있었던 가마터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모두 사라지고
어떤 곳은 아예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집이 들어선 곳도 있었다.

도공은 어린 시절,
집안이 너무나 가난하여
이곳에 팔려 오다시피 하여
도자기 굽는 법을 배우던 그 시절이 떠올라
한동안 깊은 감회에 빠졌다.

선조들이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 근처에는
수백 년 전 자신의 선배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를 부수어 버린 파편들이
흙 속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는 그 중 한 개의 파편을 주워
흙을 닦아낸 뒤 파편을 바라보며
저들의 비법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오늘날에는 무슨 청자네 무슨 백자네 하며
엄청난 값으로 팔리는 도자기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런 도자기는
생활 속의 한 도구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술을 따르는 술병이나 차를 마시는 찻잔으로
흔하게 쓰이던 것들이
요즈음 국보나 보물로 귀하게 여겨지는
그런 도자기들인 것이다.

그 옛날 가마터에서 도공들의 손에 의해
매일매일 구워지던 평범한 도자기들이
오늘날에 귀하게 여겨지는 도자기들인 것이다.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부지런히 만들어 내는 도자기들의 빛깔이
바로 오늘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빛깔과 질감이었을 것이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자신이 가마터를 만들어 놓은 곳과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장작으로 쓰는 나무도 비슷했고
쓰는 유약성분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도자기 파편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에 잠기던 도공은
어느순간 갑자기 놀라 무릎을 탁 쳤다.
다른 것이 있었다.

이곳과 자신의 가마터가 있는 곳과
확실하게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바로 흙이었다.
이곳과 그곳은 장소가 달랐으므로
당연히 흙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이곳에 바로
옛 도공들의 가마터가 많이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이곳의 흙이
푸르고 은은한 빛깔을 내는 흙이었던 것이다.

도공은 가지고 갔던 가방의 내용물을
모두 꺼내버리고 빈 가방에다
거기에 있던 흙을 퍼 담기 시작했다.

흙을 가지고 자신의 가마터로 급히 돌아온 도공은
정성을 다하여 흙을 빚기 시작했다.
그늘에서 며칠동안 말린 도자기들은 유약이 칠해졌고
얼마 안 있어 모두 불가마에 들어갔다.

입구를 진흙으로 봉하고 난 후,
정성스럽게 기도를 마친 도공은
장작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불길은 이틀 동안 가마를 새빨갛게 달구었다.

불이 꺼진 후,
열기가 식은 가마 속에 들어가서
도자기를 꺼낸 도공은
조상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꺼내어진 도자기들은 모두
그 당시 조상들이 구워 냈던 것과 같은
은은하고 푸른 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빛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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